따끈따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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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꺼이꺼이
꺼이꺼이 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머리에 배인 비릿한 바람 냄새가 그동안 지나왔던 한 해의 끄트머리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어떤 끈질긴 전염 질환 덕분에 2020년의 마무리는 어떤 느낌으로 기억에 남을지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만... 작년보다는 더 나은 엔딩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수습해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창피했던 기억이 있냐고 물었는데 2019년 1월 1일 0시를 넘긴 그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영국에 살던 때라 전 남자 친구이자 현 친구인 그와 신년 맞이 불꽃놀이를 보러 갔었다. 런던에서 제일 사랑하는 공원 중 하나인 알렉산드라 파크로 향했다. 2018년의 끄트머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공원 주위에는 영국 느낌이 가득한 예쁜 동네가 있었기에 우리는 불꽃놀이 일정보다 조금 일찍 가서 여유 ..
2020.10.15 22:21 -
[에세이] 고구마
고구마 '십! 구! 팔! 칠! ...' 아이들이 힘차게 달리다가 골목 사이로 쏙쏙 흩어졌다. 나는 친구와 함께 뛰면서 뒤를 흘끔거렸다. '삼! 이! 일! 땡! 잡는다!'하며 악쓰는 소리에 얼마 안 가 꼬마 도둑 두 명이 잡힌 듯했다. 나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티코 자동차 뒤에 숨어 친구와 키득거렸다. 체육시간 100미터 달리기는 울상이 지어졌는데 도둑과 경찰 놀이는 어찌나 재밌는지 항상 땀 범벅에 먼지 덩어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피해서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크고 한적한 길이 나오면 친구 손을 잡고 냅다 달리는 것에 재미가 들었다. 마음은 콩닥거리지만 이제는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쁜 나이가 되어버렸다. 우리 동네는 삼미 슈퍼를 중심으로 사거리의 좁은 길 양쪽으로 빌라가 다닥..
2020.10.15 22:16 -
[에세이]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Q.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하셨나요? A. 저희 집은 칭찬이 많이 인색한 집입니다. 무언가를 잘했다고 칭찬받기보다는 야무지지 못한 점, 앞에 나서서 쟁취하지 못하는 소극적임 등을 많이 지적받으면서 자라온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의 제가 선택한 길,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는 일들은 타인의 칭찬 한 마디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정에 목말랐던 것 같아요. 중학교 친구들, 선생님들이 지나가며 툭 던진 한마디가 가슴속 메마른 밭에 씨앗을 뿌려주게 된 거죠. 그 씨앗들을 살피고 가꾼 건 저의 몫이었지만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말 한마디들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는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었..
2020.10.15 22:11